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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

커피의 역사 알고마시면 더욱 깊은 맛

by chill8 2023.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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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시작에 대해

커피의 기원

서양 지역의 커피 역사는 약 3세기 정도이지만, 중동은 고대 이후 모든 사회계층에서 커피가 소비되었습니다. 커피 경작은 서기 575년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으며, 가장 오랜 정설은 10세기의 아라비아 내과 의사 라제스(Razes)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기록한 문헌에 의해 "커피는 소화나 심장박동 및 이뇨에 효과가 있다"라고 하는 상세한 임상 결과가 남아있어서, 이것은 커피에 관한 가장 중요한 초기의 문헌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커피의 기원에 대한 설은 크게 3가지로 마호메트 발견설, 에티오피아 발견설, 그리고 오마르 발견설이 있는데, 커피 분야 대부분의 전문가는 이 중에서 두 번째로 나열된, 에티오피아 발견설이 커피의 기원으로 가장 유력하다고 추측하고 있으니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에티오피아의 발견설은 에티오피아고원 아비시니아에 전해지는 이야기로, 목동 칼디가 염소들이 흥분하여 뛰어노는 것을 보고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게 되어 원인을 찾음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지켜본 결과, 목장 근처에 있던 한 나무에서 빨간 열매를 먹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그 나무에서 빨간 열매를 따서 끓여 먹어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염소들처럼 전신에 기운이 솟아나는 것을 느끼고 이 같은 경험을 다른 제자들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로 그 소문이 각지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동양의 많은 나라들에 전파가 되었고, 현재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이어져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커피의 역사 속으로
커피의 역사 속으로

 

커피의 어원

타파(Kaffa)라고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나무가 야생하는 곳의 지명인 동시에 "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어에서 "힘과 정열"을 뜻하는 "카에"라는 말과도 연관이 있다고 추측되고 있습니다. 커피의 각성효과 때문에 타파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즉, 힘을 뜻하는 단어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스만제국에서 카훼로 불리다가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카페(Cafe)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카훼, 카페 발음하다 보면 비슷합니다. 또, 관련된 학설은 아랍에서 기운을 돋우는 커피의 효능을 나타내는 뜻으로 불리다가 술을 뜻하는 "카와" 오스만제국에서는 카흐베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이후에, 유럽 각지로 전파되면서 프랑스에서는 카페(Cafe), 이탈리아에서는 카페(Caffe), 독일에서는 카피(Kaffee), 네덜란드에서는 코피(Koffie), 그리고 영국에서는 커피(Coffee)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 생겨난 카페가 어디일까요?

1. 대한민국의 카페 역사 1920년에서 1930년대에 서양 문화와 물건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면서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지자 고위층을 위한 곳이 만들어졌던 것으로 시작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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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전파

커피는 주로 이슬람 수도승들이 수양 중 잠을 쫓는 원기 회복의 식품으로 인식됐으며, 아주 성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면서, 약 11세기경 에티오피아에서 홍해를 건너 예멘으로 이식되고 대량 경작이 처음으로 시도되었습니다. 이 당시, 커피는 주로 사라센제국의 이슬람 사원 독점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약 13세기 말경 사라센제국의 쇠락으로 재정적 어려움에 부닥친 이슬람사원은 커피를 일반인들에게 판매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라센제국의 몰락 후, 이스탄불에서는 16세기 전후로 하여 커피를 마시는 장소가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그곳의 이름은 카흐베였습니다. 그렇게 커피는 대중들의 생필품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커피가 오스만제국으로부터 이탈리아로 밀무역 형태로 흘러 들어가 예술인과 문학인들을 중심으로 이탈리아 전역에 유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교회 지도자들은 커피를 사탄의 음료라며 배척했습니다. 교황에게 커피 음용 금지를 청원하지만, 이미 커피의 매력에 빠진 교황은 커피 물에 세례를 주었다고 합니다. 17세기를 전후한 제국주의 시대에 커피가 본격적으로 세계 각국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유럽 각국이 새로운 항로를 발견하고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동시에 커피나무를 심기에 적합한 지역들을 발견하기 시작한 때부터인 것 같습니다. 유럽의 제국주의는 식민지를 개척하고 그곳에 커피 묘목을 이식하기 시작하면서 커피 벨트라는 오늘날의 커피 생산지역들을 형성시켰습니다. 

 

그렇게 한국의 커피 전파는 구한말 아관파천을 전후한 시기로, 문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커피를 마신 사람은 고종 황제로 1896년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면서 커피를 마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다방은 손탁이라는 여자가 러시아 공사관 앞에서 경영하던 "정동구락부"로 이곳은 당구장과 다방을 겸한 곳으로 각종 다류 와 양식을 함께 했다고 합니다. 최초의 근대식 다방은 일본인 나카무라가 서울에 문을 연 다방이고, 다방의 이름은 그 일본인의 이름을 따서 "나카무라"라고 칭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본식 다방(깃샤텐)은 국권 피탈 직후에 명동에 문을 많이 열었으나 일부 고위층만 드나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일반인들은 감히 출입할 수도, 출입할 엄두도 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 당시에 커피를 처음 접해본 우리나라 사람들은 커피를 "양 탕국"이라고 불렀습니다. 서양의 국물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커피가 어떻게 커피가 불리게 되었으며, 커피를 가지고 있는 많은 가설들을 파헤쳐보니 더욱더 커피에 대한 애정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고위층들만 맛볼 수 있었던 그 귀하디귀한 커피가 어떻게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을까? 어디서는 저렴하게 또 어디선가는 비싼 가격에, 원두의 다양성도 너무나도 많아지고, 커피나무의 묘목이 여기저기의 기후환경에 따라 맛도 변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는데, 오늘 이 글은 커피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 너무나도 재미있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이런 다양한 선택지가 생긴 시대에 살게 되어 좋다고 해야 할지 안 좋다고 해야 할지 아직도 더 파헤쳐보고 싶은 커피에 대한 진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예전의 역사에서 말하는 것보다, 더 다양해지고, 저렴해진 커피 공화국에 사는 우리들은 그만큼 정신적으로 각성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바쁜 시대에 사는 것이 아닌지, 귀족들이 마시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것을 쉽사리 마실 수 있는 것이 특혜인 건지 생각이 많지만, 필자에게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또 하나의 영양제 같은 존재가 카페인인 것은 사실인 듯합니다. 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커피 한 잔의 시간이 꼭 필요한 순간이 24시간 안에 온다는 것이 팩트랍니다.